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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1세) |
| 2월
16일 |
백두산
소백수골 밀영 출생(한국 학계와 언론, 서방 언론들 일부에서는 '소련 출생설'을 주장). "김정일은
1942년 2월 16일 새벽에 백두밀영에서 태여났습니다."
"김정일 동무의 생가가 있는 골짜기를 소백수골이라고 부릅니다. 소백수골 안은 우리나라의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뛰여난 절경입니다. 1980년대에 우리가 이 밀영을 발굴하기 전까지만 해도 소백수골 안은 사람들의 발길이 잘 미치지
않는 천고의 밀림이였습니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 일대에서 장기간 항일열전을 전개해 오신 우리 인민의 위대 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이
시기 일제를 패망시키고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맞이 하기 위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계셨다. …… 바로 이러한 시기에 ……
김정일 동지께서는 피어린 항일의 결전의 장에서 맏아드님으로 태여나시였다." |
| 1945년
(4세) |
| 11월
25일 |
어머니
김정숙과 함께 소련을 출발, 함경북도의 웅기항에 상륙, 인근 청진으로 이동, 함경북도 청진 등지에서 40여 일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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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하순 |
평양 입성. |
| 1946년
(5세) |
| 1월
1일 |
부모와
함께 평양 근교의 만경대(아버지 김일성의 고향)를 처음 방문.
그날 증조부모(김보현) 앞에서 “김일성 장군 만세”라고 썼다고 함. |
| 날짜미상 |
남산유치원 입학 |
| 9월 |
부모와
함께 만경대 재차 방문.
여동생 ‘경희’ 출생. |
| 1947년
(6세) |
| 5월 |
부친
김일성과 함께 처음으로 묘향산 등정, 보현사 등을 견학. |
| 7월 |
동생
평일 자택 연못에서 익사(당 3세). |
| 9월
28일 |
부모와 함께 영랑호 방문. |
| 날짜미상 |
어머니
김정숙과 함께 ‘김일성종합대학교’ 건설현장 방문. |
| 1948년
(7세) |
| 봄 |
유리그릇에 물을 넣고 음정 맞추어 ‘유희곡’(遊戱曲)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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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일 |
아버지 김일성을 따라 ‘노동절’ 식전에 참가. |
| 6월
6일 |
아버지
김일성을 따라 평양 교외로 나가 ‘모내기’ 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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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
어머니
김정숙을 따라 남포조선소 화물선 '신흥호'(450t) 진수식에 참석. |
| 6월 |
유치원
운동회 자전거경기에서 친구가 넘어지자 부축해 주어 박수갈채를 받음. |
| 9월 |
유치원 고급반 과정을 마치고 남산인민학교(인민반)에 입학. |
| 1949년
(8세) |
| 4월
7일 |
아버지
김일성이 좋아하는 은방울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어머니 김정숙과 함께 소련에서 귀국하는 아버지 김일성을 마중하러 공항에
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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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2일 |
오전 2시 40분 어머니 김정숙 급사(향년 32세. 남산병원 특별병실에서 해산하다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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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
어머니
장례식 거행. 오후 1시 하관(모란봉). |
| 10월
13일 |
자강도
희천군 개고역에서 철도 전기화의 꿈(夢)을 말함. |
| 12월
31일 |
친구의
가족을 아버지 공관에 초대하여 “신춘의 모임” 등 노래를 부르며 어울림. |
| 1950년
(9세) |
| 10월
1일 |
한국전쟁의
격화로 증조부모, 여동생 등과 함께 피난. 평양에서 북상하여 명문고개를 넘어 자강도 장강군의 설매계곡(현 장자산) 도착. |
| 10월
10일 |
여동생과
함께 장자산에서 조선로동당 창건 5돐에 즈음하여 두 그루의 잣나무를 식수함(현재 이를 기념하여 이 지역을 ‘장자산혁명사적지’로
조성). |
| 10월
13일 |
피난처인
장자산에서 ‘전쟁의 비극’에 대해 토로(“전쟁에서는 전차나 비행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장 강합니다”고 말했다고
함).
그 뒤 국제연합군의 북상으로 만주를 경유하여 중국 동북부로 이동, 길림시 (吉林市)로 옮김. 이곳의 창읍소학교(昌邑小學校)에
다녔다는 주장도 있음. |
| 1951년
(1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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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기록에는 이 해가 누락되어 있음.
“1951년 한 해 동안 인민학교 2학년 과정을 독학으로 마치시였다. 그리고 1952년 11월에는 원래 3학년에서 공부하시여야
하겠으나 학업성적이 너무나 특출하시여 한 학년을 뛰여넘어 4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하시였던 것입니다” (『김정일 혁명력사강좌』,
제15회, ‘평양방송’, 1998. 2). |
| 1952년
(11세) |
| 4월
15일 |
김일성
생일 40돐에 즈음하여 『김일성 장군의 략전』 읽음. |
| 6월
중순 |
신의주에서
아버지 김일성과 재회, 공중전을 목격.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압록강을 거닐어 올라감. |
| 6월
25일 ~ 8월 16일 |
평양
근교의 인민군 최고사령부(평안남도 승호군 삼석리)에서 아버지 김일 성과 함께 여름방학을 보냄.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이때의 감회를 “그때 나는 전화의 불길 속에서 사람들이 수십 년을 두고도 간직할 수 없는
가장 고귀한 것을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조국해방전쟁은 나의 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력사적 시기”였다고 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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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
김일성이
머물던 평양 근교 최고사령부를 떠남. |
| 8월 |
가요
“조국의 품”을 창작. |
| 11월
22일 |
아버지
김일성의 지시로 북으로 귀국. 귀국 전에 만경대혁명자유자녀학원 (현 만경대혁명학원) 인민반 4학년에 편입(11월 20일,
11월 23일 등 날짜 부정확). |
| 12월
4일 |
만경대혁명자유자녀학원
소년단의 반성회 모임에서 “오점의 ‘총검’으로 조국 부모의 원수를 물리치자!”고 말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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