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953년
(12세) |
| 2월
10일 |
만경대혁명자유자녀학원에서
학급소년단원들의 모임인 ‘김일성장군의 략전 연구소조’ 결성 |
| 3월
4일 |
만경대혁명자유자녀학원의
대자보 신문의 슬로건을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로 하자고 주장. |
| 4월
15일 |
‘김일성장군의
략전 연구소조’, 학원 내 모든 학급들로 전면 확대됨.
학원소년단위원회에서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는 구호 제시. |
| 6월
1일 |
최고사령부에
있는 아버지 김일성에게 편지와 일기장, 대자보 신문(벽보), 시험 답안(성적표)을 보냄(훗날 편지 내용을 “축복의 노래”에
담음). |
| 7월
28일 |
피난처에서
‘조국해방전쟁’ 종전소식을 전하는 평양시민대회의 실황방송을 들음. |
| 8월
초순 |
증조부모와
헤어져 여동생(경희)과 함께 김일성이 있는 최고사령부로 이동. |
| 9월
1일 |
평안남도
승호군 삼석리(현 평양시 삼석구역 삼석리) 삼석인민학교 5학년에 편입. |
| 1954년
(13세) |
| 2월
1일 |
평양제4인민학교
5학년으로 전학. |
| 2월 |
조선소년단
분단총회에서 분단위원장에 선출됨. |
| 4월
15일 |
김일성
생일 42주년에 즈음하여 평양제4인민학교 학생들과 함께 “축하문”을 보냄. |
| 4월 |
과제 작문
“우리들의 교실”은 훗날 『아동문학』, 1954년 6월호에 게재됨. |
| 6월
29일~7월 14일 |
여름방학을
아버지 곁에서 보내며 함경남북도 일대의 김책제철소, 청진제강소, 청진방직공장, 6월13일탄광, 선봉수산사업소 등을 견학. |
| 9월
1일 |
평양제1중학교
입학. "정열, 그것은 위대한 창조의 원천이다"는 좌우명을 흰 종이 위에 써 책상 유리 밑에
끼워 놓음. |
| 1955년
(14세) |
| 4월
10일 |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만경대(부친 김일성의 고향)와 칠곡(모친 김정숙의 고향)을 방문(혁명사적지 답사행군의 초기형태임. 당시까지만해도
지정되지 않았음). |
| 6월
4일 |
평양제1(초급)중학교에서
보천보전투의 내용을 소개. |
| 8월 |
2학년에
진학하면서 소년단위원장에 피선됨. |
| 1956년
(15세) |
| 3월
19일 |
평양제1초급중학교
학생들에게 “이 세계에 미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총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조국 통일되는 최후의 그날까지 싸워야 합니다”
라고 말함. |
| 5월
1일 |
'로동절'행사에 아버지 김일성의 초상화를 들고 참가. |
| 5월 |
학내에서
당 제3차대회에서 제시한 제1차 5개년계획의 전망에 대한 교장 (훗날 반당 종파분자로 드러났다고 함)의 강연에 대해
당의 경제건설 기본노선(‘중공업우선, 경공업과 농업의 동시발전’)과 다르다며 강하게 논박. |
| 6월
5~14일 |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과 혁명전적지 답사단을 조직, 보천보, 삼지연 등 백두산 일대 혁명전적지들을 답사행군(최초의 ‘백두산혁명전적지
답사단’ 이라고 함). “김정일 동무가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로 혁명전적지 답사단을 뭇고 백두산 지구에 대한 답사를
떠날 용단을 내린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였습니다”(김일성의 발언). |
| 6월
8일 |
보천보
도착(이곳에는 1955년 8월 7일 김일성 동상이 건립됨). |
| 여름(추정) |
수학 시험지 답안이 학교 게시판에 게시됨.
2학년 과정을 최우등으로 마침. |
| 12월
28일 |
눈
내리는 날, 아버지 김일성을 따라 강선제강소를 견학(천리마운동 개시). |
| 12월 |
조선민주청년동맹 가입.
|
| 1957년
(16세) |
| 2월
6일 |
평양제1(초급)중학교
학교민청위원회에서 “보조분단지도원제(소년단 과외 교양 지도체계를 의미)를 내오는 것은 소년단원들의 조직생활을 강화하자는데
목적이 있습니다”라고 발언. |
| 3월
31일 |
장산에
식수. |
| 봄 |
외국어
경연대회 참가(‘무슨’ 외국어 경연대회인지 불분명). |
| 5월
10일 |
평양제1(초급)중학교
민청 초급단체위원회에서 연설(“초급단체위원회의 활동을 강화할 데 대하여”). |
| 9월
1일 |
평양의
제1고급중학교 고급반(1959년 4월 평양남산고급중학교로 개칭, 현 남산제1고등중학교)에 진학. |
| 9월 |
학교민청위원회
부위원장(위원장은 교원)에 선출. |
| 10월 |
‘조국해방전쟁’의
영웅 리수복(李壽福) 고향(평안남도 순천군 김천리 송계마을) 방문. |
| 11월
7일 |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대표단 일행과 동행하여 소련을 방문, 10월혁명 40주년 기념행사 참석 및 주요 기념관 견학. |
| 12월
초순 |
남산고등중학교의
브라스밴드를 지휘, 혁명가를 부르며 평양시내를 행진.
이후 ‘학생선전대’ 조직. |
| 1958년
(17세) |
| 3월
18~19일 |
민청중앙위원회
일군들에게 “청년들은 사회주의건설에서 돌격대의 역할을 수행하며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하는 새로운 문제를 발기하고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면서 살아야 사는 보람이 있다”고 하면서, “민청단체들이 청년들을 발전소나 철길 건설장 등에 대중적으로
진출”시켜야 한다고 말함. |
| 4월
22일 |
남산고등중학교
학우들과 함께 ‘조국해방전쟁’ 영웅 리수복 모교와 고향 마을을 재차 방문. |
| 4월 |
'조선로동당
력사연구실'을 꾸릴 것을 발기. |
|
5월 3일 |
교내
민청 확대회의에서 ‘수도건설 과제’를 토론. |
| 5월
5일 |
수도건설에
참가하는 평양제1중학교 학생, 교직원 궐기대회에서 연설하고 “우리는 이 땅 우에 사회주의 락원을 일떠세우려는 청년사회주의
건설자들의 거세찬 투쟁에 보조를 맞추어 보람찬 수도건설에 청춘의 열정과 지혜를 다 바쳐야 합니다”라고 호소. |
| 5월
초순∼6월 중순 |
평양제1고급중학교
학생청년들과 함께 평양시 살림집 건설을 위한 부재생산 전투에 참가. |
| 6월
중순 |
김일성을
따라 해주·하성의 철도 건설공사 현장을 방문. |
| 6월
27일 |
교내
민청 총회에서 마지막 연설자로 나서 “당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혁명을 위해 몸을 바쳐 싸우는 투사가 되자!”는 요지의
연설을 함. |
| 여름
|
대동강호안
공사, 학생소년궁전 건설장 참가. |
|
9월 11일 |
평양제7고급중학교에서
‘조선로동당 력사연구실’을 꾸릴 것을 제안. |
| 9월
16일 |
학내
민청 총회에서의 담화, “민청원들 속에서 당적 사상체계를 세울 데 대한 과업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청년들 속에서
당적 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자!”는 혁명적 구호를 제시. “당적 사상체계는 본질에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체계입니다.
민청원들 속에 당적 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는 것은 민청단체들 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입니다.
‘청년들 속에서 당적 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자!’ 이것이 현시기 당의 요구이며 민청원들 앞에 나서는 첫째가는 임무입니다.” |
| 10월
중순 |
학우들과
함께 황해제철소를 비롯한 공장·기업소 견학.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