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4년
(23세) |
| 3월
18일 |
“사회주의건설에서
군(郡)의 위치와 역할”(대학졸업 론문). |
| 3월
30일 |
“당과
수령에 끝없이 충실한 혁명가로 되자”(대학졸업 당시 동창생과 한 담화). |
| 3월
|
라디오·텔레비죤
방송위원회에 근무하는 무명의 텔레비전 카메라맨을 자택으로 초 대. |
| 4월
1일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 배속. |
| 4월
13일 |
당간부에게
김일성 생일을 민족 최대의 경축일로 기념하라고 요청. |
| 4월
21일 |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근무. |
| 4월
22일 |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청년동맹사업을 개선 강화할 데 대하여”(조선 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일군들과 한 담화). |
| 4월 |
며칠 후 조업 예정인 강계청년발전소 시찰. |
| 5월
16일 |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일군들에게 당활동의 중심은 김일성의 교시를 관철하고 김일성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 |
| 5월
30일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일군들에게 당사업의 주선은 “전당에 수령님의 사상체계를 세우는 것”이라는 강령적 지침을 마련해 줌.
“우리 당사업과 활동에서 주선은 전당에 수령님의 사상체계를 튼튼히 세우는 것입니다. 전당에 수령님의 사상체계를 세우는
사업은 우리 당이 존재하고 활동하는 전 과정에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사업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당사업과 당활동은
수령님의 사상체계를 세우고 수령님을 더 잘 받들어 모시며 수령님의 교시를 철저히 관철해 나가는 데 집중되여야 합니다.” |
| 6월
12일 |
조선중앙통신사
시찰. “조선중앙통신사의 기본임무”(조선중앙통신사 일군들과 한 담화). |
| 6월
19일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본격적으로 당사업 개시(“내가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기 시작한 것이 1964년 6월입니다”) |
| 8월
21일 |
“황해남도
농촌경리 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황해남도 당 및 농촌경리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
| 9월
15일 |
조선인민군
2·8영화촬영소 시찰. “군인교양에 이바지할 혁명적인 영화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일군들과
한 담화). |
| 9월
16일 |
“력사유적과 유물보전 사업에 대한 당적 지도를 강화할 데 대하여”(조선 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일군들과 한 담화). |
| 9월 |
조선영화보급사
시찰. |
| 10월
18일 |
“비행사들을
정치군사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자”(조선인민군 제855군부대 일군들과 한 담화). |
| 10월
|
방북한
말리 대통령의 특별보좌관과 회견. |
| 12월
8일 |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사업지도차 들른 김일성은 현지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를 개최, “혁명적 영화 창작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기
위하여” 김정일을 “영화예술사업을 지도할 수 있는 담당자로 위임(任命)”했다. |
| 12월
10일 |
“혁명적인
문화예술작품 창작에 모든 힘을 집중하자”(문학예술부문 일군들 앞에서 한 연설). |
| 12월
14일 |
재일본
조총련의 기본 활동방향을 제시. |
| 1965년
(24세) |
| 1월
8일 |
“당사업을
철저히 사람중심 사업으로 전환시키자”(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및 평양시 일군들과 한 담화). |
| 1월
21일 |
은률광산
시찰. |
| 2월
5일 |
룡성기계공장 시찰. |
| 2월
15일 |
“어머니다운
심정으로 인민생활을 책임적으로 돌봐야 한다”(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및 평양시 일군들과 한 담화). |
| 4월
9~21일 |
반둥회의
10돐 기념행사차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는 김일성과 동행(김일성의 안녕과 신변보위를 위한 사업, 대외행사 준비 등). |
| 4월
20일 |
인도네시아
대통령 관저에서 인도네시아 주요 인사들에게 “조선의 현황을 소개하고 자주의 깃발을 높이 들고 굳게 단결할 것”에 대하여
말함. |
| 4월
25일 |
“방송을
통하여 사회주의적 애국주의교양을 잘하자”(조선중앙방송위원회 일군들과 한 담화). |
| 4월
27일 |
“수령님의
위대성을 남조선 인민들에게 널리 선전할 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일군들과 한 담화). |
| 5월
9일 |
“신흥세력
나라들과의 친선 단결을 강화하자”(대외사업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
| 5월 |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의 담화에서 김일성의 ‘교시 관철’ 확립을 지시.
김일성의 조선인민군 제512군부대 현지지도에 동행(<朝鮮時報>, 1996년 3월 28일). |
| 7월 |
김일성의
평안북도 창성군 현지지도에 동행.
김일성이 인접 군인 삭주군의 군민들을 걱정하여 삭주군을 시찰할 때 동행. |
| 10월
12일 |
김일성의
조선인민군 금성친위 제834부대 현지지도에 동행(<朝鮮時報>, 1997년 3월 27일). |
| 11월
23일 |
평안남도
강서군 청산리협동농장에 분조관리제 도입과 농장원의 공산주의 교양사업 강화 및 농업의 과학기술적인 재배 지시. |
| 12월
16일 |
“수령의
계승문제는 영화예술부문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당 문화예술부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
| 1966년
(25세) |
| 1966~69년 |
사회과학자들과
함께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에 대한 학술연구와 토론을 하면서 노동계급의 혁명사상 100년사를 총화하는 사업을 진행. |
| 1월
3일 |
쿠바혁명
승리 7돐 경축연회장에서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에게 타국과의 외교관계에서 견지해야 할 몇 가지 원칙적 입장을 제시. |
| 1월
26일 |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 민족권리는 철저히 보장되여야 한다”(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일군들과 한 담화). |
| 2월
4일 |
“영화창작에서
생활을 깊이 있고 진실하게 그릴 데 대하여”(영화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
| 2월
7일 |
“새로운
혁명문학을 건설할 데 대하여”(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한 담화). 자주시대와 혁명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혁명문학을
건설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 “새로운 혁명문학을 건설하자!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 문학이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투적
구호입니다.” ‘수령형상 창조문학’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화한 혁명적인 문학작품 창작)을 새로운 혁명문학의 양식이라고
함. |
| 2월
26일 |
“혁명적
영화창작으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영화예술부문 창작자, 예술인들 앞에서 한 연설). |
| 3월
18일 |
평안남도
온천군 송현리 시찰. 책임일군들에게 토지정리사업을 통해 경지 면적을 늘릴 것과 각 농가에 양돈·양계를 장려하며, 농촌
문화주택을 많이 지을 것을 지시. |
| 5월
3일 |
김일성의
철광도시 송림의 황해제철소 현지지도에 동행. |
| 5월
20일~7월 1일 |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을 분석하고 총괄. |
| 6월
6일 |
“소년단사업에
대한 지도를 더욱 강화하자”(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일군들과 한 담화). |
| 6월
17일 |
“교육사업을
개선하여 유능한 민족간부를 키워 내자”(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교원들과 한 담화). |
| 6월 |
수차에 걸쳐 조선중앙방송위원회를 방문. |
| 7월
20일 |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에게 혁명의 배신자를 철저하게 폭로·분쇄하라고 지시. |
| 7월
24일~9월 11일 |
김일성의
평안북도, 자강도 일대 현장지도에 동행. |
| 7월 |
서해안의
조선인민군 부대초소 방문. 부대 정치위원들의 활동상황 조사(1967년 7월의 오기로 추정됨). |
| 8월
26일 |
김일성의
서북단 용천 먼바다 위에 있는 비단섬 현지지도에 동행. “비단섬은 로동당시대의 거창한 창조물이다”(비단섬을 돌아보면서
일군들과 한 담화). |
| 9월
23일 |
농촌경리부문 지도일군들과 담화. |
| 10월
5일 |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의 경제·국방 병진노선 견지를 강조. |
| 10월
28일 |
“당대표자회
결정 관철에서 출판보도물의 역할을 높이자”(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일군 및 기자, 편집원들과 한 담화). |
| 12월
27일 |
“예술영화
‘최학신의 일가’를 반미교양에 이바지하는 명작으로 완성할 데 대하여”(문학예술부문 일군 및 창작가들과 한 담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