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년
(28세) |
| 1월
19일 |
조선인민군
당위원회 제4기 제4차 전원회의에 참석. “인민군대 당조직과 정치기관들의 역할을 높일 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및 조선인민군 정치국 일군들과 한 담화). |
| 1월 |
문화성
당위원회 활동 지시. |
| 2월
11일 |
“혁명에 필요한 명곡을 창작하자”(영화음악 작곡가들과 한 담화). |
| 2월
19일 |
“영화창작사업에
대한 당적 지도를 잘할 데 대하여”(조선예술영화촬영소 초급당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한 연설). |
| 2월
25일 |
영화예술부문 당위원회 확대회의에 참석. “일군들은 사업방법과 작풍을 끊임없이 개선하여야 한다”(영화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
| 2월 |
조선인민군 구분대 방문. |
| 3월
24일 |
“새
세대들을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무장시키자”(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영화과 일군들과 한 담화). |
| 4월
20일 |
“예술인들과의 사업을 정치적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영화예술부문 일군 및 창작가들과 한 담화). |
| 4월
29일 |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일군이 되여야 한다”(영화예술부문 일군 및 창작가들과 한 담화). |
| 5월
13~16일 |
“영화예술인들은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한 돌격대가 되여야 한다” (영화예술인들의 무대공연 총화모임에서 한 연설). |
| 5월
29일 |
“인테리정책
관철에서 나타난 편향을 바로잡을 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과학교육부문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
| 5월 |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예술부문 당원협의회에 참석, 영화예술가의 무대공연 총괄집회 지도, 가무혁명을 일으키는 방침 제시. |
| 6월
5일 |
“당세포의
기본임무는 당원들을 혁명과업 수행에 조직 동원하는 것이다” (백두산창작단 당세포 일군들과 한 담화). |
| 6월
8일 |
평안남도
강서군(현재 남포시 강서구역) 잠진(箴津)협동농장 시찰. |
| 6월
9~14일 |
“영화예술인들은
우리 당 사상전선의 기수”(조선예술영화촬영소 일군협의회에서 한 연설) |
| 7월
6일 |
당
선전선동부 책임일군들에게 김일성의 교시와 당의 방침을 확립하여 모든 반당적이고 이색적인 요소와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라고 지시. |
| 7월 |
자강도
희천공작기계공장 시찰. |
| 8월
9일 |
강원도를 방문하여 강원도 당위원회 책임일군들에게 강원도 내의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를 정비하고 당원과 근로자들에게 혁명전통
교양사업을 강화하라고 지시. |
| 8월
12일 |
“청소년들 속에서 혁명전통교양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일군들과 한 담화). |
| 9월
초순 |
평양시
역포구역 무진리, 용산리 ‘피바다’ 로케 장소에 예고 없이 찾아감. |
| 9월
11일 |
“예술영화
‘피바다’의 형상수준을 더욱 높일 데 대하여”(예술영화 ‘피바다’ 창조성원들과 한 담화). |
| 9월
27일 |
“불후의
고전적 명작 ‘피바다’를 영화로 완성하는 데서 나서는 몇 가지 문제”(영화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
| 9월 |
평양
교외를 차를 타고 지나다가 밤이 떨어지고 있는 계곡에서 차를 멈추고, 동행한 일군들에게 “바쁘더라도 밤을 줍고 경치를
보고 가자”고 말함. |
| 10월
24일 |
당 선전선동부 일군들에게 김일성이 해방 직후 영화예술부문에 내린 '교시'를 전면적으로 편찬하라고 지시(혁명가극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방침 제시,<朝鮮時報>, 1993년 2월 16일) |
| 12월
9일 |
“영화예술인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할 데 대하여”(영화예술인들의 사상 투쟁회의에서 한 연설). |
| 1970년
(29세) |
| 1월
9일 |
“작가,
예술인들 속에서 혁명적 창작기풍을 세울 데 대하여”(문학예술부문 지도 일군 및 예술인들 앞에서 한 연설). |
| 1월
12~15일 |
“영화예술부문
사업을 개선하는 데서 나서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위대한 수령님의 문예사상 연구모임에서 한 결론). |
| 1월
17일 |
“작가들은
아는 것이 많아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영화문학 작가들 앞에서 한 연설). |
| 2월
10일 |
영화예술부문
일군들에게 불후의 고전적 명작 『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영화로 옮길 때 전격전, 섬멸전 방법으로 ‘속도전’을 펼쳐 ‘속도전’의
본보기로 창조를 하라고 지시. |
| 2월
14일 |
“불후의
고전적 명작 『한 자위단원의 운명』의 사상예술적 특성에 대하여”(불후의 고전적 명작 『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영화로 옮기는
사업에 참가하는 예술인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 |
| 2월
19일 |
“문학예술작품에
사람들의 혁명적 세계관 형성과정을 깊이 있게 그릴 데 대하여”(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
| 2월
26일 |
“예술영화
‘한 자위단원의 운명’ 창작단 성원들에게 보낸 편지.” |
| 3월
4일 |
“민족문화유산을
옳은 관점과 립장을 가지고 바로 평가 처리할 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일군들과 한 담화). |
| 3월
29일 |
“사회안전일군들
속에서 정치사상 교양사업을 강화할 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사회안전성 정치국 일군들과 한 담화). |
| 5월
7일 |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종업원 궐기모임에서 연설. |
| 5월
16일 |
당 선전선동부 일군들에게 문학, 예술작품의 창작에 대하여 속도전의 전형을 창조하여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부문에 일반화하라고
지시. |
| 5월
23일 |
김일성의 평안북도 창성군 일대 현지지도에 동행. 이때 『아내의 직장』창작가들의 집필장소가 되었던 남포 근교의 우산장 휴양소를
방문. |
| 5월 |
조국통일위업
수행과 조국통일에 대한 전략사상을 천명. |
| 6월
6일 |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책임일군들과 담화. |
| 6월
18일 |
“사회주의
현실을 반영한 혁명적 영화를 더 많이 창작하자”(작가, 연출가들과 한 담화). |
| 6월
하순 |
원산
영예군인 수지일용품공장 방문(『朝鮮畵報』, 1996년 2월). |
| 8월 |
시찰에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승무원들과 “영원히 빛나는 조선의 별” 등을 함께 노래. |
| 9월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승진. |
| 10월
9일 |
“조선기록영화촬영소의
기본사명에 대하여”(조선기록영화촬영소 종업원들 앞에서 한 연설). |
| 10월
16일 |
“영화예술부문
일군들 속에서 혁명적으로 일하며 생활하는 기풍을 세울 데 대하여”(영화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
| 10월
19일 |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기본사명에 대하여”(조선기록영화촬영소 종업원들 앞에서 한 연설). |
| 11월
2~13일 |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 참석. |
| 12월
3일 |
“당생활을
강화하여 간부들을 철저히 혁명화하자”(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일군들과 한 담화). |
| 12월
26일 |
조선인민군
구분대 전차병들의 공연작품 관람. “일당백의 혁명전사가 되라”고 당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