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년
(30세) |
| 1월
초순 |
조선적십자
중앙위원회 일군들과 만나 재일동포의 귀국 재개를 위한 회담 상황에 대하여 질문. |
| 2월
12일 |
“영화창작사업에서 나서는 몇 가지 문제”(영화문학 작가들과 연출가들 앞에서 한 연설). |
| 2월
15일 |
“영화창작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킬 데 대하여”(위대한 수령님의 문예사상 연구모임에서 한 결론). |
| 3월
하순(20일) |
문화예술부문
일군들에게 불후의 고전적 명작 『피바다』를 가극으로 옮길 데 대한 과업을 제시, ‘피바다식 혁명연극’을 제작하라고 지시.
“우리는 불후의 고전적 명작 『피바다』를 가극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하여 가극혁명을 일으켜야 합니다.” |
| 봄 |
당
간부들과 함께 사격 연습.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낀 강서군 청산리협동농장을 방문, 모내기 준비상황을 보고받은 며칠 뒤 평양의 예술단으로 구성된 농촌지원
‘선동대’를 파견. |
| 4월
28일 |
“우리
식의 혁명적 영화창조체계를 철저히 세울 데 대하여”(영화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
| 5월
10일 |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책임일군들에게 김일성 초상화 배지를 제작하여 전 인민이 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함. |
| 5월
12일 |
평안남도
강서군 청산리협동농장의 모내기현장 방문. 청산리협동농장의 관리일군들에게 청산리를 농촌기술혁명의 본보기로, 공산주의 농촌건설의
원종장으로 꾸려야 한다고 강조. 모내기 기계를 잘 쓰지 않고 인해전술에 매달리는 그들의 잘못을 일깨워 줌. 농촌경리의
종합적 기계화 실현문제를 제기. “청산리를 잘 도와줄 데 대하여”(강서군 청산리협동농장 모내기전투에 동원된 예술인들과의
담화). “청산리에 봄이 와야 온 나라에 봄이 오고 청산리에 풍년이 들어야 온 나라에 만풍년을 안아올 수 있듯이 청산리가
모든 면
에서 앞서 나가야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 농촌건설을 앞당길 수 있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공산주의 농촌건설의 모범을 실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
| 5월
18일 |
“당일군은 높은 정치실무적 자질을 갖춘 실력가가 되여야 한다”(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일군들과 한 담화). |
| 6월
11일 |
2·8비날론공장 시찰. |
| 6월
14일 |
“중앙방송위원회
사업을 개선할 데 대하여”(조선중앙방송위원회 위원장과 한 담화). |
| 6월 |
조선인민군 구분대 방문. |
| 7월
8일 |
“영화예술 교육사업에서 사회주의 교육학의 원리를 철저히 구현할 데 대하여”(평양연극영화대학 교직원들 앞에서 한 연설). |
| 7월
17일 |
혁명가극
‘피바다’를 완성하고 김일성 등 혁명원로 등을 ‘모시고’ 공연 시연.
이 공연 이후 1년 사이에 『꽃파는 처녀』를 각색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 를 비롯하여 혁명가극 ‘당의 참된 딸’,
‘밀림아 이야기하라’, ‘금강산의 노래’ 등을 창작 지도.
“혁명가극 ‘피바다’는 우리 식의 새로운 가극”(혁명가극 ‘피바다’ 창조성원들 앞에서 한 연설). “불후의 고전적 명작
‘피바다’를 혁명가극으로 옮김으로써 가극혁명의 포성을 온 세상에 울렸으며 가극예술의 새 시대를 열어놓았습니다.” |
| 8월
2일 |
요양소에서
치료중인 김일 병문안(『朝鮮畵報』, 1995년 12월). |
| 8월
3일 |
외국문출판사의
책임일군들에게 김일성 저작의 번역과 출판활동을 강화하라고 지시. "영화예술부문의 당사업을 강화할 데 대하여"(당
영화예술부문 일군협의회에서 한 연설). |
| 8월 |
백두산에
오름. “이 세상에 우리 수령님처럼 기나긴 세월 준엄한 혁명의 길을 걸어오신 분은 없습니다. 이제 몇 달 지나면 수령님께서
환갑을 맞으시게 됩니다. 이제는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우리가 걸머지고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함.
김일성의 생일 60돐을 맞는 사업에 주력하라고 지시. 평양에 김일성의 동상건립 추진. 조선혁명박물관을 새로 꾸리는 사업
지시. 혁명전적지와 사적지, 각 도의 ‘김일성동지 혁명사적관’을 잘 꾸릴 것과 그것이 당의 유일사상교양의 거점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라고 지시. ‘김일성훈장’과 ‘김일성상’ 제정토록 함. 충성의 송가 “수령님의 만수무강 축원합니다”를 창작·보급하게
함. |
| 9월
4일 |
량강도
삼지연군 리명수언을 방문. 량강도를 방문할 때마다 김일성의 혁명사상을 정식화하기 위한 저술사업에 심혈을 기울임.
압록강 상류 무포의 7호물동가 낚시터에서 김일성의 혁명사상을 정식화하기 위해 깊은 사색을 함. |
| 9월
6일 |
백두산 정상에 올라 일출을 봄. 량형만 의사 동행. |
| 10월
1일 |
“청년들을
계속 혁명의 정신으로 무장시키자”(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년사업부, 사로청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
| 10월
11일 |
“인민경제
계획화사업에 대한 당적 지도를 강화할 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경제부서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
| 10월
16일 |
“예술작품은
창작가의 열정과 탐구의 열매이다”(위대한 수령님의 문예사상 연구모임에서 한 연설). |
| 10월
28일 |
“피바다식
혁명가극 창작원칙을 철저히 구현하여 사상예술성이 높은 혁명 가극을 창조하자”(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
| 10월
29일 |
“수령님의
탄생 60돐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맞이하기 위하여”(당중앙위선전선동부 일군들과 한 담화). |
| 10월 |
『김일성
동지 략전』 편찬·발행토록 지시. |
| 11월
18일 |
혁명가극
‘당의 참된 딸’ 창작일군협의회에서 연설. |
| 12월
28일 |
“복잡한
군중과의 사업을 잘할 데 대하여”(당중앙위 선전선동부 일군들과 한 담화). |
| 1972년
(31세) |
| 1월
1일 |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김일성의 생일 60회(환갑)에 즈음하여 열린 신년 경축공연 지휘·감독. |
| 3월
초순 |
황해북도
일대 시찰. |
| 3월
9일 |
황해북도
은파군의 양동리 양동협동농장과 옥협협동농장을 방문, 농촌에 파견된 당의 기계화 초병들인 트랙터 운전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눔. 농촌기술혁명에서 종합적 기계화와 화학화를 실현하여 모든 농사일을 향상시키라고 격려, 농촌기술혁명에 앞장설 것을
당부.
“지금 당에서는 농촌기술혁명에서 종합적 기계화와 화학화를 실현하여 모든 농사일을 보다 헐하고 흥겹게 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 3월 |
평안남도
문덕군 용오협동농장과 동립협동농장 시찰. |
| 4월 |
김일성
생일 60회를 맞아 경축공연에 참가한 대표와 담화. |
| 5월
31일 |
백두산에
오름. 함께 오른 일군들에게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무장할 것” 을 강조. |
| 5월
|
량강도
대홍단군의 국영5호농장 시찰.
남북공동성명 초안을 검토, 조국통일 3대원칙에 기초하여 성명의 전반 내용이 구성되도록 세심하게 지도. “남북공동성명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 3대원칙의 정신을 철저히 관통시켜야 합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추호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
| 6월
초순 |
량강도
혜산시에서 보천보전투 승리 35주년 기념행사 지휘. |
| 6월
26일 |
“4·25체육선수단
앞에서 나서는 과업에 대하여”(4·25체육선수단 성원들과 한 담화). |
| 초여름 |
혜산시에서 ‘통일혁명당’ 대표단과 환담. |
| 7월
11일 |
“동,
인민반 사업을 개선 강화하자”(평양시 서성구역 하산동 일군들과 한 담화). |
| 7월
14일 |
“조국통일
3대원칙을 관철하기 위하여 견결히 투쟁하자”(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및 텔레비죤방송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
| 8월
11일 |
“영화문학
창작에서 혁명적인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조선문학예술총동맹 산하 창작가들의 사상투쟁회의에서 한 결론). |
| 8월
22일 |
문예총
산하 영화문화창작사 창작가들의 사상투쟁회의에 참석. “텔레비죤 방송의 사상예술적 수준을 높일 데 대하여”(조선문학예술총동맹
산하 창작가들의 사상투쟁회의에서 한 결론). |
| 8월
|
외국
순회공연을 위하여 조직된 교예단의 공연을 관람. |
| 여름 |
교예단원들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자, 김일성을 맞이하여 공연하게 되었다고 격려. 몇 개의 교예기술이 가능한지 질문. |
| 9월
6일 |
문예총
산하 창작가들의 사상투쟁회의에 참석. “문학예술작품 창작에서 혁명적인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조선문학예술총동맹 산하
창작가들의 사상투쟁회의에서 한 결론). |
| 10월
17일 |
“부대
정치위원의 임무”(조선인민군 군부대 정치위원과 한 담화). |
| 10월
23일 |
일군들과
공장 기술자들에게 종합적 자동화 구상을 밝힘. |
| 10월 |
교예단
극장을 방문, 교예단들의 공연 관람.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됨. |
| 11월
7일 |
국립연극극장을
방문, 국립연극단 작가, 예술인들의 사상투쟁회의에 참석. “주체시대에 맞는 새로운 혁명가극을 창작할 데 대하여”(국립연극단
작가 · 예술인들의 사상투쟁회의에서 한 결론). 이 결론에서 주체시대에 맞는 새로운 혁명연극을 창작하기 위한 혁명적 방침
제시. ‘우리식의 새로운 혁명연극’ 등 원칙적인 문제들과 작가, 예술인들이 혁명연극을 창작하기 위한 사상예술적 준비를
잘 갖추기 위한 방침 제시.
얼마 후 고전적 명작 ‘성황당식 혁명연극 창조사업’이 나옴. |
| 11월
30일 |
새벽까지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 리허설 지도. |
| 12월
27일 |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6차 전원회의에 참석. |
| 12월 |
유능한 기술일군들을 집단적으로 황해제철소에 파견. 그들이 그곳 노동계급과 힘을 합쳐 생산공정의 자동화를 실현할 것과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풀어 나갈 것을 제시. 황해제철소에 창조된 자동화의 모범을 공업부문에 널리 일반화시키기 위한 사업을 적극 전개하라고
지시. |
| 1973년
(32세) |
| 1월
1일 |
김일성에 의해 발기된 ‘3대혁명소조운동’ 추진. |
| 1월
24일 |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책임일군들에게 황해제철소 자동화 공사장의 활동상황을 적극 지원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중앙방송 분견대와 예술선동대를 황해제철소
자동화 공사장에 파견하라고 지시. |
| 1월
28일 |
“생산을
자동화하여 근로자들을 힘든 로동에서 해방하자”(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황해제철소를 자동화의 본보기로 꾸리고,
그 경험을 전국에 일반화시켜 인민경제 모든 부문을 자동화하라고 지시. “자본가들은 자동화를 하는 데서 돈중심 전법에 매여달리지만
우리의 자동화전법은 사람중심 전법입니다. 우리의 자동화전법은 주체의 자동화전법입니다.” |
| 1월
|
평안남도 문덕군, 개천군, 박천군 등 여러 지방의 협동농장 시찰. |
| 2월
16일 |
‘김일성상’
받음. |
| 3월
1일 |
“혁명가극
건설에서 이룩한 성과를 공고 발전할 데 대하여”(혁명가극 건설에 관한 위대한 수령님의 문예사상 연구모임에서 한 결론). |
| 3월
28일 |
“문학예술부
정치국사업을 개선 강화할 데 대하여”(문학예술부문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
| 3월 |
여러 가지 명칭의 학습반을 ‘김일성동지 혁명사상학습반’으로 고친 다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혁명력사 도록』을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다시 만들도록 함. 이 노작을 기본교재로 하여 학습을 진행시키도록 함. |
| 4월
11일 |
『영화예술론』. |
| 4월 |
원정경기에
나가는 체육인을 공항에서 배웅. |
| 5월
25일 |
『불멸의 력사총서』 중 장편소설 『혁명의 새벽』을 읽고 김일성의 혁명 업적과 관련된 소설을 많이 출판하여 당원과 근로자들을
혁명적 세계관으로 무장시키라고 지시. |
| 6월 |
유엔에
상주할 대표부 설치와 유엔을 통한 대외활동 문제들을 밝힘.
당, 경제, 출판보도 일군들과 예술인들로 경제선동대를 구성하여 재령, 은률, 태탄광산에 나가 경제선동의 경험을 쌓으라고
지시. |
| 7월 |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 겸 선전선동부장으로 선출됨.
유엔상주대표부 설치와 유엔을 통한 대외활동 문제 지적. |
| 8월
21일 |
새로운
당생활 총화제도를 전당에 일반화시키기 위하여 당중앙위원회 조직 지도부 책임일군협의회 소집. “전당에 새로운 당생활 총화제도를
세울 데 대하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한 연설).
“당생활 총화제도를 바로 세우는 것은 현시기 우리 당건설과 당사업 발전의 절박한 요구입니다.” “당생활 총화제도를 바로
세우는 문제는 현시기 당사업에서 형식주의의 낡은 틀을 마스고 근본적인 개진을 가져오기 위한 중요한 고리의 하나로 됩니다.”
협의회가 끝난 뒤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을 내려보내 새로운 당생활 총화제도를 일반화하기 위한 ‘강습과 방식상학’을
조직, 전당에 새로운 당생활 총화제도를 세움.
여기에서 방식상학이란 당정책을 정확히 관철시키고 혁명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그 집행과정에서 이룩된 모범을 일반화시키고
실제로 사업하는 방법을 가르쳐 줌으로써 간부들의 정치실무 수준을 높이는 교육·교양의 한 방법을 말함. |
| 8월
29일 |
당
선전선동부 책임일군들에게 당의 유일지도체계를 확립하는 활동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경험 토론회, 강습회를 조직하라고
지시. |
| 8월 |
함경남도
일대 시찰. 북방의 어느 한 공장을 시찰한 뒤 4km 떨어진 곳에 있는 기계공장 방문. |
| 9월
17일 |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7차 전원회의(9월 4~17일) 마지막 날에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비서 겸 선전선동부 비서로 선출됨. |
| 9월 |
당 선전선동부의 초급당총회에서 당원들의 조직생활 강화를 위한 새로운 대책을 제시. “당 사상활동에서 혁명적 전환을 이룩하자”(담화).
전당적으로 새로운 당생활 총화제도를 받아들이도록 함. |
| 11월
5일 |
제1회
전국예술인 학습경연대회에 참석. “항일유격대식 학습방법을 널리 받아들여 김일성주의 학습에서 새로운 전환을 이룩하자”(제1차
전국예술인 학습경연대회 참자가들 앞에서 한 연설). 대회 참가자들에게 항일무장 투쟁시기에 창조된 ‘문답식 학습방법’의
우월성과 그 구현방도를 밝힘. ‘문답식 학습방법의 우월성’은 학습에서 형식주의, 교조주의의 낡은 방법을 없애고 학습을
실속 있게 조직하고 광범한 대중의 학습열의를 높여 학습을 대중 자신의 사업으로 전환시킨다고 하면서, 학습에서 집단적인
통제와 동지 상호간의 협력을 강화하여 학습을 실천과 결부시켜 진행하라고 강조. |
| 11월
8일 |
“당
사상사업을 개선 강화할 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지방지도과 책임지도원 협의회에서 한 연설). |
| 11월 |
6월의
경험을 토대로 금성뜨락또르공장과 승리자동차종합공장에서 대규모의 경제선동을 벌여 경제선동의 본보기를 창조. |
| 12월
8일 |
“사회주의적
민족교예를 더욱 발전시킬 데 대하여”(평양교예단 료해 검해사업에 참가한 일군들과 한 담화). |
| 12월 |
눈이 오는 날 아침, 황해남도 구월산의 산기슭 은강군 초교리의 수정강을 차량으로 이동.
주요 공장·기업소 책임일군들과 3대혁명소조 책임자들의 방식상학을 조직하여 ‘황해제철소의 자동화경험 따라배우기’를 전개하라고
지시. 자동화의 경험을 쌓은 기술자들을 주요 공장·기업소에 파견토록 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