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5년
(34세) |
| 1월
1일 |
“전군을
김일성주의화하자”(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전군을 주체사상화하기 위한 방침 제시. “인민군대를 강화하기
위하여서는 전군을 김일성 주의화하여야 합니다. 전군을 김일성주의화한다는 것은 모든 군인들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한
참다운 김일성주의자로 만들며 군건설과 군사활동을 철저히 김일성주의에 기초하여 진행해 나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전군을 김일성주의화하여
우리 인민군대를 완전무결한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만드는 것은 군건설의 총적 임무입니다.” |
| 1월
25일 |
당
근로단체 부장에게 당창건 30주년을 맞이하여 사로청이 ‘속도전 청년 돌격대’를 조직하여 철도 전기화를 실현하라고 지시. |
| 1월
28일 |
당
사업방법을 더욱 개선하여 3대혁명을 힘있게 벌여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키라는 문건 발표. |
| 1월 |
광복의
천리길’ 답사행군 조직.
그 뒤 국가 정기 답사사업으로 진행하기 위한 방침 제시. |
| 2월
15일 |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을 통해 ‘공화국영웅’ 칭호 수여가 발표되었지만, 생일이 8일 지난 2월 25일에 수령. |
| 2월
16일 |
조국통일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강령적 과업을 제시. |
| 2월
22일 |
한밤중에
남북적십자 회담장 시찰. |
| 2월
27일 |
지방인민위원회
선거에 즈음하여 공적 장소에 모습을 드러냄. |
| 2월 |
‘복잡대중’이라
할지라도 예술창작을 통해 인민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공로가 있는 예술인에게는 ‘명예’ 칭호를 내리라고 지시.
건설현장을 시찰, 습기에 견딜 수 있게 벽화는 회화가 아니라 모자이크화로 하라고 지시. |
| 3월
6일 |
왕재산혁명사적지
건설현장을 방문, 공사 지도. |
| 3월
15~24일 |
함경북도,
강원도 일대 현지방문. “왕재산혁명사적지의 대기념비 건설현장 시찰 뒤, 함경북도부터 함경남도, 강원도를 돌아, 각 도의
현안을 하나씩 하나씩 해결했다. 3개 도에서 20여 개의 단위를 시찰하고, 그 10일간 걸은 거리는 2,400km에 이른다.” |
| 3월
17일 |
눈이
내리는 가운데 험한 고개를 넘어 ‘3월17일발전소’ 시찰. |
| 3월
22~23일 |
4시
40분부터 7시 17분까지 열차 내에서 함경남도 당위원회 지도. 7시 20분부터 13시까지 함주협동농장 지도. 13시
20분부터 23시까지 함흥지구의 각 공장 및 기업소, 문화기관 지도. 23시 40분부터 3월 23일 0시 8분까지 혁명사적지와
혁명사적관 지도. |
| 3월 |
중앙과
도, 시, 군에 있는 ‘3대혁명소조 종합실’을 ‘3대혁명소조 지휘부’로 개편.
어느 날 평양시 건설 총계획도를 보고 수도건설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웅대한 설계도를 펼쳐 주”었다고 함.
“평양을 혁명적 수령관으로 일관된 인민의 수도, 혁명의 수도로 가장 훌륭하게 건설하려는 것이 나의 구상이고 결심 입니다.”
김일성의 70회 생일 안으로 다 끝내겠다는 의지를 밝힘.
함경북도 ‘김일성동지 혁명사적지’를 현지 지도하면서 당의 유일사상교양의 거점으로 혁명사적관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방도
제시.
함경북도 온성군 당위원회 활동 시찰.
왕재산협동농장의 어느 농장원 집 방문. |
| 4월
30일 |
“녀성간부들을
더 많이 키울 데 대하여”(당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부부장협의회에서 한 연설). |
| 4월 |
어느
해군부대를 방문, 해군 함정에 승선. |
| 4~5월 |
신의주,
형성, 안주 등을 시찰. |
| 5월
2일 |
“현정세의
요구에 맞게 혁명역량을 튼튼히 꾸리며 당사업을 더욱 개선 강화할 데 대하여”(당중앙위원회 당비서, 부장, 부부장협의회에서
한 연설). 이 협의회에서 온 사회에 혁명적 생활기풍을 세워 사업과 생활을 더욱 혁명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방도 제시. |
| 5월
6일 |
“우리의
주체예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당 선전선동부, 문화예술부 일군들 에게 한 연설). |
| 5월
20일 |
당비서,
당부장, 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부장들의 협의회에서 3대혁명 소조운동을 강화하라고 지시. |
| 5월 |
모내기가
한창인 어느 날 외국방문에서 돌아온 김일성으로부터 전화지시를 받고, 모내기전투를 하루빨리 끝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그 길로 평안남북도 시찰.
3대혁명소조운동에 대한 당조직들의 지도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함. |
| 6월
13일 |
“현시기
당사업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
| 6월
17일 |
“당
내부사업체계를 더욱 튼튼히 세우기 위한 몇 가지 과업.” |
| 6월
23일 |
제1단계
공사완료 보고받고, 서해 바닷가에 있는 은률광산 방문, 은률광산의 장거리 대형 벨트컨베이어 건설현장을 지도. |
| 6월 |
당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책임일군회의를 지도.
평안북도 동림군 건설현장, 서해지구의 철광 생산지인 은률, 그리고 강원도 농촌지대 시찰.
대남공작기관에 대한 집중검열 지시.
평양시 락원거리 건설현장 시찰. 어느 한 살림집 내부 방문. 당창건 30돐을 맞아 락원거리는 새로운 ‘평양속도’의 위력을
떨쳤다고 함. 이 무렵 만수대예술극장이 준공되고, 대성산유희장이 완공되었으며, 창광원과 평양산원이 준공되고, 인민대학습당
공사가 막바지에 달했음. |
| 7월
1일 |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 생산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키자”(문건).
이른 아침에 함경남도 검덕광업종합기업소에 도착, 선광장 시찰 뒤 광부를 만나기 위해 광부용 인차(인크라인)로 20리 갱
막장을 지나 ‘4·5갱 막장’ 지하로 들어감.
“제일 수고하는 사람들이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들인데 그들을 갱 안에서 살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광부들을 아껴야 합니다.
우리가 막장에서 전투를 벌리는 것도 결국은 우리 로동계급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
| 7월
2일 |
점심
때 카메라맨 신윤선의 부보를 들음.
함경남도 내 각 공장·기업소를 시찰하고 해변의 숙소에서 묵음.
밤늦게 홀로 해변을 산책. |
| 7월 |
흥남비료련합기업소
시찰.
서호수산업소의 냉동공장 시찰.
령안광산 방문, 이중노동영웅 김필판 소대장과 악수. |
| 8월
17일 |
평양의
락원거리 시찰. |
| 8월
|
배움의 천릿길 백두산혁명사적지 답사. 국가적인 정기답사로 조직됨. |
| 9월
25일 |
조국통일을
위한 새로운 방침을 제시했다고 함. |
| 10월
3일 |
왕재산혁명사적지 방문(3번째), 완성된 김일성 동상을 시찰. |
| 10월
5일 |
“음악무용
창작에서 당의 방침을 옳게 구현하자.” |
| 10월
19일 |
왕재산혁명사적지
완공식에 참석. |
| 10월
22일 |
“혁명가극
창조에서 사상예술성을 높이기 위하여.” |
| 10월
25일~11월 3일 |
대남공작기관
3개 부서 합동 당총화회의에 4일간 참석, 마지막 날 연설. |
| 11월 |
당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책임일군협의회에서 “사상도 기술도 문화도 주체의 요구대로!”라는 혁명적 구호를 제시하고 ‘3대혁명붉은기
쟁취운동’을 발기.
이 운동의 첫 봉화지로 12월 검덕광업종합기업소와 청산리협동농장을 선정. |
| 12월
초 |
전군에
‘3대혁명붉은기 쟁취운동’을 전개하여 이 운동을 ‘붉은기중대’, ‘붉은기전위중대 운동’과 밀접히 결부하여 전개시키라고
지시. |
| 12월 |
김일성을
주인공으로 한 혁명영화 ‘누리에 붙는 불’ 창작사업을 발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