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976년
(35세) |
| 1월
1일 |
“올해
당사업에서 틀어쥐고 나가야 할 몇 가지 중심적 과업에 대하여”(도당 책임 비서,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부부장협의회에서
한 연설). 이 연설에서 3대혁명붉은기 쟁취운동의 본질과 중심과업을 밝힘. “3대혁명붉은기 쟁취운동은 속도전, 사상전의
원칙을 구현하여 사람들의 사상개조운동과 경제, 문화, 국방건설에서의 집단적 혁신운동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힘있게 밀고
나감으로써 혁명적 대사변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튼튼히 갖추고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을 최대한 다그치는 새로운 대중적
운동입니다.
3대혁명붉은기 쟁취운동의 중심과업은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전면적으로 더욱 다그치는 데 있습니다.” 또한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한목숨 바쳐 싸우자!”는 충성의 구호를 제시하고 군인들 속에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확고한 신념과
의리로 간직하도록 하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진공적으로 전개하라고 지시. |
| 2월
6일 |
“농촌경리부문에
대한 당적 지도를 강화하여 올해 농업생산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키자.” |
| 3월 |
재일동포의 민주주의적 민족교육을 위한 대책을 지시.
평양교예학교 제1기 졸업생 졸업작품 발표회 참석. |
| 5월
1일 |
“병원관리
운영사업을 개선 강화할 데 대하여.” |
| 6월
22~23일 |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 참석. |
| 7월
4일 |
삼지연혁명전적지를
찾아 김일성 동상을 건립할 위치와 광장의 부지 등 건설내용을 지시. 백두산 등정, 백두산사적비 시찰, 보천보혁명전적지를
보고 돌아감. |
| 8월
13~14일 |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 참석. |
| 8월 |
제5차
비동맹국가 수뇌자회의에 참가하는 대표단의 활동방향을 제시. |
| 10월
2일 |
“김일성주의의
독창성을 올바로 인식할 데 대하여”(당이론 선전일군들과 한 담화). |
| 10월
11~14일 |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12차 전원회의를 통해 김일성 ‘수령의 유일한 후계자’, ‘영명한 지도자’, ‘친애하는 지도자’로 공식 결정되었다는
주장도 있음. |
| 10월
22일 |
당의 통일과 단결을 이룩하는 데서 거대한 의의를 가지는 문헌 발표. |
| 10월 |
“당의
정치사상적 통일과 순결성을 대를 이어 견결히 수호하자”(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책임일군회의에서 한 연설).
이 연설에서 혁명전통에 대한 올바른 입장과 태도를 가지고 그것을 철저히 옹호·고수해 나가는 근본문제를 천명. |
| 11월
20일 |
늦은
밤, 대성산유희장 배치도와 오락설비의 해설 사진집을 열람. |
| 12월 |
도당위원회
책임비서협의회 개최. |
| 1977년
(36세) |
| 1월 |
관현악작품
감상. |
| 2월
23일 |
“김정일이
후계자로 확정”이라는 共同通信의 보도가 있었음. |
| 2월
|
대성산유원지
건설에 관하여 김일성과 의논.
‘공화국영웅’ 칭호 수여, <로동신문>에 고딕체로 보도됨. |
| 3월
24~31일 |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 참석. |
| 봄 |
모란봉경기장(현
김일성경기장)에서 평양시내 학생들의 매스게임 ‘조선의 노래’ 총 리허설 시찰. |
| 4월
14일 |
삼지연혁명전적지에 건립하는 대기념비 구성안과 군상 도안 열람. |
| 4월 |
김일성을
형상화한 혁명영화 ‘누리에 붙는 불’ 제작 다시 지도. |
| 6월 |
평양에
온 함경남도 책임일군들을 불러 화학비료 생산과 관련된 문제 의견교환.
장소 미상인 어느 중요한 건설현장에서 밤을 지새워 현장 지휘하고 새벽에 들어감. |
| 7월
3일 |
개성
시찰중 군사분계선 마을 방문, 뒷산에서 쌍안경으로 남쪽을 바라봄.
판문점의 한 초소 방문. 판문점 전망대에 오름. |
| 7월 |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에서
과학자들의 보고를 받음. |
| 8월 |
집단체조
창작성원들에게 선물 수여. |
| 9~10월 |
도,
시, 군당 전원회의와 군중대회, 집회를 열고 교육테제를 지지하며 이를 관철하기 위한 토의사업을 진행하라고 지시. |
| 9월 |
조총련
제11차 전체대회에서 김일성주의화를 조총련사업의 총적 과업으로 내외에 선포. |
| 10월 |
만수대예술단을
지도.
완공된 대성산유원지를 시찰, 오진우와 함께 유회시설을 타 봄.
“사회주의교육에 관한 테제”를 관철시키기 위한 사상전환 방침을 제시. “교육테제를 실현하자면 사상전환을 하여야 합니다.” |
| 11월
8일 |
“당정책
관철에서 혁명적 기풍을 세울 데 대하여”(당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한 연설). |
| 1978년
(37세) |
| 1월
1일 |
“자력갱생의
혁명적 구호를 높이 들고 전당, 전 인민을 불러일으켜 제2차 7개년계획을 앞당겨 수행하자”(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선선선동부
책임일군들 앞에서 한 연설).
이 연설에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더욱 높이 발휘하자!”는 혁명적 구호 제시. |
| 1월 |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16차 전원회의에서 전체 당원들에게 보낼 ‘당중앙위원회 편지’가 채택되도록 함.
제2차 7개년계획의 첫해 과업을 공화국창건 30돐까지 앞당겨 수행하기 위한 ‘100 일전투’를 조직하고, 새 전망계획
수행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라고 지시.
가까운 연간에 장·중편소설 100편을 창작하기 위한 방침 제시. 이에 따라 『불멸의 력사총서』 중에서 장편소설 『근거지의
봄』, 『준엄한 전구』, 『백두산 기슭』등이 발표됨 |
| 2월
6일 |
당
선전선동부 책임일군들에게 철도부문에서 ‘수송혁명 200일전투’를 전개하라고 지시. |
| 2월
17일 |
‘7·1과학자·기술자
돌격대’ 경험을 총화하고 인민경제의 주공전선에 전문지식을 가진 유능한 과학자들을 집중 파견하는 ‘2월17일과학자돌격대’
운동이라는 새로운 조치를 취함. 또한 훗날 모든 과학자,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이 과학혁명, 기술혁명 수행에서 김일성에 대한
충실성을 더욱 높이 발양하라고 요구하면서 김일성의 생일을 따서 ‘5·19기술혁신돌격대’를 ‘4·25기술혁신돌격대’ 로
명칭 개편. |
| 3월
1일 |
“영화예술을
발전시키는 데서 나서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
| 3월
8일 |
“당
사상사업의 요구에 맞게 영화부문사업을 개선 강화할 데 대하여”(론문). |
| 6월
14일 |
국립연극극장에서 공연된 고전적 명작 '성황당을 각색하여 혁명연극 '성황당'의 창작활동을 지도. "혁명연극의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열어 나가자" (국립연극단 창작가들과 한 담화) |
| 6월 |
만경대창작사에서
창작한 김일성 초상화를 보고 지도. |
| 7월
12일 |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참석. |
| 7월
13일 |
“당
안에 혁명적 규률을 세우며 사회주의 경제건설사업에 대한 당적 지도를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경제건설에 대한 당적 지도를
강화할 데 대한 문헌) |
| 7월
14일 |
평양·원산간 고속도로 건설현장 시찰. |
| 7월 |
‘5·18무사고정시견인
초과운동’ 제기. 대중적 증송투쟁을 벌이도록 함. 여러 구간의 철도 전기화공사와 역사(驛舍) 건설, 철도 현대화공사 추진하라고
지시.
비동맹국가 외교부장회의에 참가하는 대표단에게 활동방향 제시. |
| 8월
22일 |
“현시기
당사업에서 나서는 중심과업에 대하여.” |
| 8월
31일 |
혁명연극
‘성황당’ 시연회 관람. 연극이 기념비적 명작으로 완성된 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면서, “당이 내놓은 연극혁명
방침을 높이 들고 지난 몇 해 동안 긴장한 투쟁을 벌려 혁명연극 ‘성황당’을 무대에 올려놓음으로써 낡은 연극에 종지부를
찍고 연극의 새 시대를 열어 놓았습니다”라고 말함. ‘성황당’ 식 혁명연극에 이어 ‘혈분만국회’, ‘딸에게서 온 편지’,
‘3인 1당’을 무대에 올리게 함. |
| 9월
6일 |
‘김일성훈장’
받음. |
| 9월
9일 |
김일성광장
주석단을 시찰하고, 공화국창건 30주년 기념행사 준비활동을 지도. |
| 9월
말 |
77년
10월 “교육테제” 관철을 위한 사상전환 방침 제시로 발의한 전국교육일군대회를 평양에서 개최(1만 5천여 명의 대표가
참가한 북한 역사상 최대규모의 행사). |
| 11월
10일 |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협의회에 참석. |
| 12월
6일 |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당 선전선동사업을 개선 강화하자”(론문). |
| 12월
25일 |
“당의
전투력을 높여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한 연설)에서
“우리식대로 살아 나가자!”는 구호 제시.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 당이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는
전략적 구호입니다.” |
| 12월 |
늦은
밤 평양역 앞 환상선거리(현 창광거리) 시찰. |
|